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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박구리

입안에 초콜릿

 

 

밸런타인데이. 그 설레는 날이 다가왔다. 늘 다가오는 밸런타인데이를 챙기는 것은 여자의 큰 행복이자 작은 고민거리였다. 벌써 자성과 만난 지 3년이 지나. 4년 되는 날의 밸런타인데이는 이벤트의 소재가 고갈될 만 했다. 작은 머리를 이리저리 굴리며 어떻게 아저씨를 기쁘게 해 줄까, 어떻게 놀래 줄까! 등등의 혼자만의 상상으로 여자의 작은 입이 씰룩거린다. 꼬리를 무는 상상에 여자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지고. 연신 손부채질이다. 무슨 상상을 한 걸까?

 

 

 

***

 

 

 

자성은 어린 제 연인이 이번엔 어떤 이벤트를 준비했을지 기대가 되었다. 매번 2월 14일이 다가오기 전, 자성은 항상 연인에게 괜찮다며 말하지만. 그건 속과 다른 말이었다. 어느 누가.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싫어할까. 단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더라도 연인에게 받는 것은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그것이 인상을 찌푸릴 만큼 단 초콜릿이더라도.

 

 

이런저런 설레는 맘을 품고 자성이 현관문을 열었다. 이상했다. 강한 단내를 풍겨야 할 집안은 아무런 냄새 없이 조용하기만 했다. 자성은 신발을 벗으며 연인의 이름을 다정하게 불렀다. 총총 뛰어나와 반기는 연인의 얼굴이 어딘가 불그스레하다. 자연스레 여자가 자성의 재킷을 품에 안았다.

 

"일찍 왔네요?"

 

14일이 아닌가? 자성은 시간을 보는 척 잠깐 휴대폰을 들여다봤다. 날짜는 정확히 2월 14일이다.

 

"씻고 나와요."

 

자성은 의아함을 느끼곤 샤워를 하러 욕실로 들어갔다. 물을 틀고는 이리저리 움직이며 생각한다. 연인에게 무슨 일이 있나 싶어도. 그런 내색은 전혀 없었다. 그럼 뭘까. 달달한 냄새가 진동해야 할 오늘! 왜 평소와 다름이 없을까? 자성이 머리칼을 헝클이며 내려오는 물을 맞았다. 따뜻한 물이 몸을 적시는데도 마음은 어쩐지 시렸다. 벌써 연인의 사랑이 식은 걸까?

 

"젠장.."

 

자성은 신경질적으로 벽을 쾅쾅 내리쳤다. 어린애가 돼버린 듯. 밀려오는 화를 감당하기 힘들었다.

 

자성은 힘이 축 빠져있었다. 그 단 것이 뭐라고. 밸런타인데이가 뭐라고! 자길 이렇게 비참한 마음을 들게 하는 걸까. 거울에 비치는 제 모습이 꼭 심통 난 어린애 같아 더 보기 싫었다. 축축하게 젖은 머리칼을 정리하지도 않고 자성이 나왔다. 거실로 나가니 캄캄하다. 식탁 쪽에 초가 벌겋게 빛을 내고 있다. 연인이 얼른 오란다. 자성은 상한 기분을 애써 감추며 식탁으로 몸을 옮겼다.

 

"아저씨.. 머리 안 말렸어요?"

 

연인의 말은 귀에도 안 들어온다. 식탁 위에 놓인 초콜릿. 그것에 화가 풀린 듯했으나. 그간 주었던 것들에 비하면 너무 조그맣다. 언제 이렇게 마음이 좁아졌을까. 자성은 초콜릿 그것에 의의를 두려 했으나. 자꾸 그간 받았던 것들이 신경을 건드린다.

 

"우리 아저씨.. 감기 걸리겠다."

 

자성 뒤로 몸을 옮긴 여자는 자성의 목에 걸린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톡톡 건드리며 말리기에 집중한다. 자성은 이 다정한 손길에 화가 조금 더 누그러지는 것을 느꼈다. 자성은 속으로 자신을 욕했다. 유치한 놈. 한심한 놈.. 등등의 것.

 

"아저씨. 회사 일은 어땠어요?"

 

조곤조곤한 말투에. 조금 더 화가 누그러진다. 아아.. 이다지도 유치할 수 없다. 자성은 비릿하게 웃었다. 그냥 평소와 같다고 대답한 자성이 식탁 위에 있는 작은 초콜릿 하나를 집었다.

 

"아저씨. 그거 나 줘봐요."

 

어깨 옆으로 얼굴 하나가 쏙 나와 입을 벌린다. 자성은 얄미운 그 입안으로 초콜릿을 넣어 주었다. 여자는 그것을 녹이느라 말이 없었다. 자성은 제 입이 멋대로 툴툴거리기 전 막아버리겠다는 심산으로 초콜릿을 넣으려 하자 연인이 그것을 제지한다. 자성의 머리칼을 말리던 수건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여자가 자성의 얼굴을 붙잡고 입을 맞췄다. 자성은 달큰한 입맞춤에 화가 단번에. 연인의 입안에 초콜릿처럼. 녹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여자의 허리를 끌어안아 제 위에 앉히며 자성은 연인의 혓바닥에 엉켜들었다. 깊어질수록 자성의 입에도 단 맛이 물들었다. 입천장에 묻어있는 초콜릿을 쓸고, 볼 안의 여린 부분에 묻은 초콜릿을 쓸고. 치아에 묻은 초콜릿을 쓸었다. 달큰한 맛에 자성은 기분이 좋아졌다.

 

"하아.. 하아.. 맛있어요?"

 

왜 현관문을 열면 자길 반겨야 할 단내가 나지 않았는지. 자길 마주한 얼굴이 왜 그렇게 붉었는지. 모든 것이 이해가 되기 시작한 자성이 번들거리는 연인의 입술을 보면서 웃는다. 여자의 눈이 대답을 기다리는 눈치다.

 

"글쎄.."

 

자성은 식탁 위에 손을 매끄럽게 놀렸다. 여자의 눈이 자성의 손을 쫓다가 다시 자성을 쳐다본다. 대답을 기다리는 눈이 반짝거린다. 자성은 다시 작은 초콜릿을 집어 들었다. 그것을 제 입으로 넣어, 와그작 씹어 본다. 쌉싸름하고 달큰한 맛에 자성이 인상을 조금 찌푸린다.

 

"한 번 더 먹어봐야 알겠는데.."

 

머뭇거리는 척 자성이 그대로 여자의 입을 삼켰다. 아직 제 입안에 있는 초콜릿을 여자의 입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것을 녹이려는 빌미로 여자의 혓바닥을 빨고. 물었다. 여자는 자성의 입안에 있는 초콜릿을 다 녹이려는 듯 자성의 치아에 혀를 놀렸다.

 

"하.. 이젠.. 맛있어요..?"

 

번들거리는 것을 한 번 쓰느라 여자의 혓바닥이 빼꼼히 나왔다가 들어간다. 자성이 기분 좋게 웃었다. 여태 받았던 초콜릿 중에 자신에게 잘 맞는. 딱 맞는 초콜릿이었다.

 

"맛있어요."

 

자성이 다시 초콜릿을 집어 들었다. 여자가 해맑게 웃으며 자성의 목에 손을 둘렀다.

 

"우리 오늘.. 이거 다 먹을까요?"

 

여자의 요구에 응하는 듯. 자성은 자신의 입에 초콜릿을 넣어, 다시 한 번. 여자의 입술을 찾았다. 서로의 입안에서 누구의 것인 지 모를 초콜릿들이 녹아간다.

 

 

 

***

 

 

 

밸런타인데이 기념으로 올리려 했는데 이제 올리네...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