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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박구리

이중구가 유부남이 아니라는 설정에 쓰는 썰 上

(또 다른 결론)

 

 

 

중구는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되었는지 생각할 겨를 없이 달려드는 계집애 하나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늘 옆에 여자가 끊이지 않는 중구에게 들러붙는 여자들은 몸매가 끝내주거나, 얼굴이 끝내주거나. 둘 중 하나였지만 이번 계집애는 어느 하나 충족하는 게 없었다. 얼굴이 영 못생긴 건 아니지만 끝내주진 않았고, 몸에 제대로 된 볼륨은 찾을 수 없는 몸. 그런 계집이 벌써 한 달을 넘어, 세 달 간 중구의 곁에서 서성인다.

 

 

중구가 처음으로 욕을 했을 때, 여자는 깜짝 놀란 두 눈을 숨기지 못 한 채 안절부절 하더니, 이젠 그렇지도 않다. 오히려 욕하는 게 어쩜 그렇게 섹시한가를 중구에게 물어본다. 사람이란 본래 누군가 나를 좋아해 주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이 잠깐뿐이라는 것.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더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라고. 누군가 나를 좋아해 주는 것이 아주 좋은 일이라는 걸 알지만, 사람은 그것이 오래 지속되면 그 사랑에 익숙해져 아랑곳 않는다. 그럼 결론은 똑같아진다. 사랑을 주는 사람도 시들해지는 법. 그런데 중구에게 매일 찾아오는 이 여자는, 아직 그렇지 않다. 삼 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시들지 않았다. 얼마 갈지 모르겠지만.


"거 씨발 조용히 못해?"

 

여자가 쉼 없이 놀리던 입을 꼭 다물고 놀란 얼굴로 중구를 본다.

 

"계집애가 왜 이렇게 눈치가 없어 씨발!!"

 

가뜩이나 골드문 차기 회장이 누가 되느냐로 말이 많아서 머리가 터질 것 같은데. 눈치 없는 여자가 것도 모르고 쫑알 쫑알 거린다. 중구 맘 같아선 테이블을 뒤엎어야 좋을 것 같은데 그런 행동은 하지 않았다. 거친 말로 화를 풀 뿐. 여자의 눈이 이리저리 바쁘다, 꼭 도르륵 도르륵 눈알이 움직이는 소리가 날 것 같이 바쁘다.

 

"아.. 아저씨 많이 바빴구나.. 미안해요.. 내가 눈치 없이."

 

계집애가 풀 죽은 모습은 또 왜 그렇게 짜증나는지. 중구는 욕지거리를 흘리며 입술을 씹었다.

 

"욕하는 게 좋다고 지랄할 땐 언제고. 목소리가 기어들어가네 씨발."

 

중구가 빈정거리자 여자가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손톱을 가지고 우물쭈물거리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상훈을 본다. 차마 중구를 볼 용기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 나중에 봬요.."

 

도망치듯 사무실 밖으로 나가는 여자를 보고 중구가 속으로 욕을 삼켰다. 자신에게 좋다고 쫓아다니면서 귀찮게 하면서, 가는 인사는 저 새끼한테 해? 게다가 웃기까지? 중구는 치솟는 질투심에 결국 테이블을 엎었다.

 

"유상훈 너 이 새끼 안 꺼져?!"

 

치졸한 질투심에 중구가 거칠게 타이를 끌어내렸다. 왜 그 계집애가 풀 죽은 모습이 꼴 보기 싫은지, 상훈에게 어색한 웃음을 흘리는 꼴이 왜 꼴 보기 싫은지. 알 것 같았다. 아니 잘 알고 있었다. 여자의 좋아해! 좋아해! 좋아해! 그 끊임없는 고백의 결실이 맺어진 순간. 또 하나의 결말이 여자와 중구 앞에 있었다. 상황의 역전은 아니더라도, 중구 역시 여자가 좋아진 것이다. 물론 중구는 그 사실이 마냥 달갑지만은 않아, 여자에게 그 속내를 비추어 보여주진 않았다. 그래도 여기서 중요한 것은. 속내를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천하의 이중구가 어린 계집에게 빠졌다는 것이다.

 

 

 

***

 

 

 

석동출이 죽고 난 후, 정청 꽁무니만 따라다니던 늙은 것들이 제게 찾아와 아부한 이후로 기분이 꽤 괜찮아졌다. 그 새끼들이 수만 다르게 틀지 않으면, 차기 회장 자리를 노릴 만 해졌다. 그럼에도 완전히 기분이 풀리지 않은 것은. 그 어린 계집의 행방이 묘연해진 것 때문이리라. 꺼지라 해도 안 꺼지던 것이, 풀이 죽은 모습으로 떠난 그날 이후로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중구는 조급해지는 마음을 다스렸다. 차라리 이게 낫다고. 이게 가장 나은 상황이라고.

 

"이사회 때까지 그 늙은 꼰대들 감시 잘 해라. 늙은이들 세치 혀는 믿을게 못되거든."

 

"예! 형님! 걱정 마십쇼."

 

중구는 소파에 몸을 기대 잔에 찬 양주를 삼켰다. 콩알만 한 계집이 보고 싶어졌다.

 

"상훈아."

 

"예! 형님."

 

중구가 상훈의 귀에 무어라 말하자. 상훈이 씩 웃는다. 중구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아 상훈의 머리통을 한 대 후려치고. 다시 양주를 한 모금 삼켰다. 그 알싸한 맛 때문은 아니지만, 중구의 입가에 미소가 띠였다가 곧 사라진다.

 

"근데 니가 걔 번호는 어떻게 알아?"

 

"아.. 그게.. 그러니까.."

 

중구의 눈이 매섭게 번들거리고 상훈의 목젖이 울렁인다. 단말마의 비명만 들리고 조용해졌다.

 

 

 

***

 

 

 

4/22

다음편이 하편일지 중편일지는 모르겠지만 총 3회 안에 끝을 낼 예정입니다! 오래 시간을 끌어서 죄송해요! 이 글을 쓰려했던 때는 시원했었는데 지금은 많이 덥네요. 앞으로 더 많이 더워질거고 ㅜㅜ 다들 무더위 조심하시고 건강하세요^^